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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회 > 차문에 대한 류문의 입장, 2011. 3. 31.

 
文化柳氏 先系歷史 收錄에 관한 건
(문화류씨 선계역사 수록에 관한 건)

 
수신 : 各 姓氏宗中 貴中 (각 성씨종중 귀중)
발신 : 文化柳氏大宗會 (문화류씨대종회)
제목 : 文化柳氏 先系歷史 收錄에 관한 건 (문화류씨 선계역사 수록에 관한 건)

 
1. 귀종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다름 아니오라, 지난 400여년 동안 문화류씨(文化柳氏) 선계의 역사가 잘못 알려져 왔음이 밝혀졌기에 바로잡고자 합니다. 귀문의 출판물과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이 사실을 반영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3.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동안 문화류씨의 역사의 묘사는 이런 방식으로 주어져 왔습니다.
 
“문화류씨는 차씨(車氏)와 같은 조상에게서 갈린 동족이성(同族異姓)이다. 시조 대승공 류차달(大丞公 柳車達)의 선대는 고대의 제왕인 황제(黃帝)의 후손으로서, 동쪽으로 와서 평양의 일토산(一土山) 아래에 살며 왕(王)씨가 되었다가 다시 변성(變姓)하여 차(車)씨가 되었다. 차씨는 신라 때 대대로 승상을 지냈으며, 차건신/갑(車建申/甲)은 애장왕의 보상(輔相)이 되어 정사를 도왔고 죽어 왕의 예로써 장례를 지냈는데, 그 무덤이 차릉(車陵)이다. 류차달의 5대조인 승색(承穡)은 애장왕의 왕위를 찬탈한 헌덕왕을 시해하려다 실패하고 도주하여 류씨로 변성하였다. 그후 류씨로 내려왔으며, 류차달에 이르러 고려 태조의 삼한 통일에 큰 공을 세워 태조가 장자(長子)인 효전(孝全)에게 ‘조상의 공을 잊을 수 없다’하여 차씨를 사성(賜姓), 본관을 연안으로 삼게 하였고, 차자(次子) 효금(孝金)은 계속 류씨를 이어가도록 하였다.”
 
그런데 최근 십수년 동안 다수의 학자들과 재야사학자들의 연구발표에 의하면 이 묘사는 류차달의 공적과 그 아들 류효금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님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곧, 황제와의 연결, 왕씨와 차씨와 류씨로의 변성, 차건신/갑, 차릉, 차/류승색, 류/차효전의 행적과 류차달의 아들임 등이 모두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조작의 대강(大綱)은 조선시대 중반 임진왜란 직전에 이루어졌는데, 특히 『차원부설원기』라는 문헌이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차원부설원기』의 본문 말미에는 그 저자로 박팽년(朴彭年) 공이 명기되어 있고, 1456년 5월 17일의 날짜와 형조참판이라는 직함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직함이 잘못되어 있고, 더구나 이 날짜 며칠 후에 사육신변고가 일어나서 박팽년 공도 희생당했습니다. 실제 『차원부설원기』가 세상에 나온 것은 1580년대인데, 이것만 보아도 이 문헌이 저자와 시기를 날조하고 집현전학자들의 권위와 사육신변고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역사를 꾸며낸 것임이 자명합니다. 이것은 가장 눈에 띄는 사실일 뿐, 『차원부설원기』에는 온갖 조작이 들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역사학자들조차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 “(설원기는) 조작된 위서(僞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 이 책은 편찬체제, 내용서술, 등장 인물들의 행적이나 서․ 기문(序 ․ 記文), 48인의 응제시(應製詩) 등 어느 것을 막론하고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도 최근까지 이 책을 위서로 단정하지 못한 것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문헌 고증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반면 선현 ․ 선조들의 의리와 충절에 대해서는 무조건 찬양 일변도였기 때문이다.” [이수건, 이수환, “조선시대 신분사 관련 자료조작”, 대구사학 86집, 2007. 2.]
- “설원기는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위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난옥, “여말선초 정치변동과 배타적 가문의식(家門意識) - 정도전을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2007.]
- “설원기의 내용 중 (설원기가) 위작이라 판단할 확실한 부분은 무엇인지, 내용 중 문제가 되는 점을 간략히 지적해 보고자 한다.” [박은정, “차원부설원기 이본의 유통과 그 배경”, 한국사론 56권, 2010.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위 논문, 2009.]
 
문화류문의 시조이신 대승공 류차달의 사적은 이미 고려시대 금석문에 등재되어 있고,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이 황해도 구월산 자락에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북한에서 보존유적으로 지정했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문화류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족보’인 영락보(永樂譜, 1423년)를 간행하였고 그 덕택에 가문의 역사가 일찍부터 정립되었습니다. 사회의 어지러움을 틈타 거짓 역사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지난 400백여년 동안 지배해 오면서 각종 공가(公家) 및 사가(私家) 문헌에 사실로 들어가서 현재는 백과사전과 역사사전에까지 올라가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저희 문화류문에서는 환골탈태하는 심정으로 증명된 사실에 기초하여 오직 시조 류차달에서 시작하며 그 독자(獨子) 류효금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재정립했습니다. 그리고 대전 소재 뿌리공원의 유래비, 출판물,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각종 관계 단체와 기관에도 협조를 요청해 오고 있습니다.
 
4. 간단히 말씀드리려 노력했으나 간단하나마 근거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어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귀문의 문헌과 홈페이지 등에서 문화류문의 역사가 언급될 때 조작된 역사에 입각한 묘사가 다시 이용되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언급된 자료는 요청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또한 문화류문의 공식 홈페이지(http://moonhwaryu.kr/)에도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 귀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이상 -
文化柳氏大宗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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